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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의 창업자, 역사, 차별성

 

나이키의 창업자

나이키는 필립 햄슨 나이트와 윌리엄 제이 바워맨이 공동으로 창립했으며 필립은 1938년 2월 24일 오레곤 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나 1962년 스탠퍼드 경영 대학원에서 MBA를 취득하기도 했으며 재학 중에는 독일 브랜드와 경쟁하기 위해 일본에서 저가의 고품질 운동화를 수입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제안하는 논문을 썼습니다. 바워맨은 1911년 2월 19일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태어났으며 1948년부터 1972년까지 오리건 대학교에서 그만의 훈련방법과 장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유명한 육상코치로서 일을 했습니다. 필립 나이트가 일본의 Onitsuka Co. 와 계약을 맺고 Tiger 운동화를 미국으로 수입하여 판매하는 독점 유통업체를 설립하였는데 이 신발을 육상선수들에게 적용과 판매를 하기 위해서 바워맨 와 1964년 Blue Ribbon Sports라고 하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신발을 개발하고 만드는 데 있어서 열정이 넘쳤던 이들은 블루리본스포츠 자체적으로도 신발 디자인을 개발하기 시작하면서 Onitsuka과의 갈등이 고조되었습니다. 1971년 결국 Onitsuka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Onitsuka의 상품을 판매를 할 수 없게 되자 기존 회사의 이름을 승리의 여신은 이름을 따서 Nike로 변경하였는데 여기에는 운동화시장을 지배하겠다는 야망을 반영한 것입니다. 이후 이들은 운동선수들을 지지하는 마케팅 등을 강조하였습니다. 나이키라는 브랜드를 운동선수들에게 특화되고 고성능의 운동 장비가 될 수 있도록 개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필립은 나이키의 상징적인 "Swoosh" 로고와 "Just Do It" 슬로건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바워맨은 보다 고성능의 러닝화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열정을 쏟았으며 최초의 경량운동화인 나이키 와플 트레이너의 혁신적인 밑창디자인을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더 나은 운동화를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으로 나이키 초기의 성장과 고품질, 고성능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결과 전 세계 스포츠 및 문화에서 상징적인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나이키의 역사

나이키는 두명의 창업자인 필립과 바워맨이 각각 500달려를 투자하여 1964년 Blue Ribbon Sports(BRS)를 창업하면서 역사가 시작이 됩니다. 초창기에는 단순히 일본의 Onitsuka Tiger의 상품을 미국에서 단독으로 유통을 하기 위하여 설립되었었지만 추후 스스로 운동화 디자인을 개발하게 되면서 Onitsuka Tiger과의 계약이 무산되고 추후 1971년 나이키라는 이름으로 변경하여 지금의 나이키가 될수 있었습니다. 나이키만의 상징적인 Swoosh 로고는 그래픽디자인 학생이였던 Carolyn Davidson에게 35달러를 주어 만들기도 했습니다. 1972년에는 최초의 나이키 브랜드의 제품인 "Nike Cortez"가 출시되었고 나이키 코르테즈는 오리건주 유진에서 열렸던 미국 육상 경기에서 처음로 선보이면서 많은 운동선수들과 코치들에게 관심을 끌었습니다. 이후 1973년 오리건 대학교의 대표 육상 올림픽 선수인 Steve Prefontaine를 후원계약을 체결했습니다. Prefontaine과 Nike의 협력은 러닝 커뮤니티에서 브랜드의 명성을 드높이기에 좋은 마케팅이기도 했습니다. 1974년에는 더 나은 쿠션닝과 독특한 와플 패턴모양 밑창이 있는  Waffle Trainer를 발명하였고 나이키를 있게 만든 상품이기도 했습니다. 1977년 Nike Blazer 농구화를 출시하고 육상계에 제한하지 않고 농구계도 진출을 하게 됩니다. 이신발은 George Gervin과 같은 NBA 선수의 지지를 받습니다. 1978년에는 공식적으로 회사의 이름을  Nike, Inc.로 변경하면서 독립적인 신발 회사로서의 새롭게 출발을 했습니다. 1979년에는 Frank Rudy가 개발한 Nike Air 쿠셔닝 기술을 적용한 최초의 신발인 Air Tailwind를 출시하였습니다. 이신발은 쿠셔닝과 편안함을 동시에 제공하면서 Nike Air의 제품라인을 만들수 있게 하는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1980년에는 나이키는 상장하였고 회사의 성장과 다양한 제품라인의 개발은 나이키를 글로벌적 입지를 다질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1982년에는 Nike Air의 기술을 적용한 최초의 농구화인 Air Force 1을 출시했습니다. Air Force 1은 특히 힙합과 스트릿웨어 커뮤니티에서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1984년에는 Michael Jordan이라는 신인 농구 선수와 후원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Air Jordan 라인은 스포츠 마케팅에 혁명을 일으켰고 Nike를 농구 시장의 리더로 자리매김했습니다. 1985년에는 대학농구팀을 위해 디자인된 Dunk를 출시했으며 Dunk는 팀 유니폼과 어울리는 다양한 색상으로 제공되었고 스니커즈 매니아들에게 인기 있는 신발이 되었습니다. 1987년에는 밑창에 외부적으로 에어큐션이 보이게 디자인된  Air Max 1을 출시했고 이는 혁신적인 디자인과 마케팅 캠페인으로 히트를 쳤고, Air Max 라인은 Nike 제품 라인업의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1988년에는 Nike는 광고 대행사 Wieden+Kennedy가 만든 "Just Do It" 광고 캠페인을 시작합니다. 이 슬로건은 광고 역사상 가장 잘 알려지고 성공적인 슬로건 중 하나가 되었으며, Nike의 브랜드 정체성을 공고히 하고 매출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1990년에는 오리건주 포틀랜드에 첫 Niketown 매장을 오픈하여 소비자들에 실제로 제품을 착용해보도록 마케팅하였고 이러한 컨셉은 새로운 디자인의 홍보에도 좋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1991년에는 나이키의 편안함과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하는 Air Huarache를 출시하였고 운동선수를 넘어서 많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1992년에는 프로 NBA 선수를 포함한 최초의 미국 올림픽 농구 팀인 "Dream Team"을 위해 USA Basketball과 파트너십을 맺으며 팀의 성공과 함께 유명 선수들은 Nike의 세계적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1995년에는 Sergio Lozano가 디자인한 Air Max 95를 출시하였고 1996년에는 골프 선수 Tiger Woods와 후원 계약을 맺고 골프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골프장에서 타이거 우즈의 성공과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 덕분에 Nike는 골프 의류 및 장비 분야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선점할수 있었습니다. 1997년에는 매끈하고 반사적인 디자인이 특징인 Air Max 97을 출시하는데 유럽과 아시아에서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1998년에는 해외 공장의 노동자와의 문제로 인하여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이에 따라 나이키는 공급업체의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공장내에서의 모니터링을 강화하는 등 근무 조건과 투명성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를 취하며 위기를 모면하게 됩니다. 1999년에는 공동 창립자 Bill Bowerman이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000년는 충격을 흡수하고 에너지를 반환하도록 설계된 독특한 쿠셔닝 시스템을 특징으로 하는 신발 라인인 Nike Shox를 출시합니다. Shox 기술은 2000년대 초반에 이 브랜드의 시그니처 혁신이 됩니다. 지금까지도 제품라인 확장을 위하여 무한한 노력과 동시에 나이키에 처음으로 선보인 코르테즈 라인을 새롭게 선보이는 등의 모습을 통해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나이키의 차별성

나이키브랜드가 지금까지 많은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을수 있었던 이유로는 여러 가지의 차별성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 첫 번째 차별성으로는 혁신적인 제품과 디자인과 기술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나이키 에어기술로 내구성이 뛰어나면서도 유연한 장점을 가지면서 특화된 운동선수들의 기량을 더욱 높이는 등 고성능의 제품을 만들 수 있게 했으며 플라이니트 기술 또한 고강도 섬유를 이용하여 몸에 꼭 맞는 착용감을 선사하였으며 리액트폼으로 부드러우면서도 반응성이 좋고 러닝화를 뛰어넘어 다른 운동화에서도 높은 성능을 자랑하는 등의 기술력을 가졌습니다. 또한 신발을 넘어서 의류에 있어서도 나이키가 선보인 드라이핏과 더마 핏등의 습도와 온도를 조절할 수 있게 만든 원단의 기술력은 나이키가 가진 가장 큰 강점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두 번째로는 상징적인 브랜딩, 마케팅으로 스우시 로고와 Just Do It이라는 슬로건이 나이키 만이 가지는 아이덴티티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었습니다. 나이키의 첫 시작이 운동선수들의 더욱 높은 기량을 내게 하기 위한 보조 장비로 시작된 만큼 나이키에서 만드는 상품을 육상, 농구, 골프 등의 재능 있는 운동선수를 후원계약을 체결하면서 나이키가 가진 기술력과 그들이 가진 영향력을 모두 뽐낼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세 번째로는 기술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디지털로 변환시켜 주면서 보다 나이키가 가진 성능을 객관적인 수치로 보여줄 수 있었다는 점으로 Nike Run Club  Nike Training Club등과 같은 앱을 이용하여 개인적인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제공했고 운동의 과정을 기록하고 사용자를 적극 참여 시키면서 소비자와 나이키를 연결했습니다. 네 번째로는 운동산업 내에서 지속가능한 혁신을 중점으로 두고 발전하고 있다는 점으로 Move to Zero캠페인처럼 재활용 폴리에스커와 유기농 면을 이용한 지속가능한 소재를 사용 약속하고 탄소배출과 폐기물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으며 순환경제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섯 번째로는 문화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치는 위치에 있다는 점으로 스포츠웨어와 스트릿웨어 사이의 격차를 줄이고 운동선수를 위한 제품을 뛰어넘어서 패션에 민감한 소비자들에게도 인기를 끈 상품을 많이 출시하면서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여섯 번째로는 글로벌 적인 입지로 현제 190개국 이상에 진출하였으며 북미, 유럽, 아시아에서는 확고한 입지를 현재까지도 잘 다지고 있다는 점으로 현지에 맞춘 상품의 제공, 마케팅 등이 나이키의 매력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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